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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언제나 청춘 시흥 갯골인형극단 황복수씨(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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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군생활 마치고 인형극단서 또 다른 즐거움 아이들 웃음에 피로가 싹~

 
   

“인형극을 보고 밝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을 보면 온종일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나 말고도 극단에 있는 할머니들 모두가 인형극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는게 삶의 보람이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게 되는 이유죠.”

평균연령 70세. 할머니 14명과 할아버지 1명으로 이뤄진 시흥시 갯골인형극단에서 청일점인 황복수씨(70)는 인형극 공연이 없는 날인데도 분주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어 인형이 젖지 않도록 비닐로 감싸고 차에 실어 앞으로 있을 공연준비를 해야 해서다.

갯골인형극단에서 그는 극단운영 전반을 담당하며 운전, 장비관리, 인형극까지 하는 멀티플레이어다.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며 꽃다운 청춘을 모두 보내고 나서도 힘든 시간을 견디다 만난 인형극단 덕분에 그에게 꿈같은 시간이 열린 셈이다.

“인형을 직접 만들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바쁜 일정을 보내도 힘든 줄 모르고 지낼 때가 많죠. 생각해봐요. 평생 군대에서 몸담았던 사람이 인형극단 단원으로 활동할 걸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꿈만 같습니다”

■ 인형극단과 우연한 만남… 지금은 떼어놓을 수 없는 필연
시흥시 갯골인형극단의 만남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대구시가 고향인 황씨가 개인 사정으로 시흥시에 집을 얻게 됐고 그때 우연히 군 시절 알고 지내던 지인을 만나 시흥시니어클럽을 소개 받으면서 갯골인형극단과 인연이 맺어졌다.

갯골인형극단을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다. 행운이 따르는 계속된 우연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갯골인형극단에서 활동하며 즐거운 나날들을 보낼수 없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아는 사람 때문에 찾아온 우연한 인연이었지만 지금은 내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필연이 됐다”며 “그때 시흥시니어클럽에 가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형님은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덕분에 갯골인형극단을 알 수 있었다”며 고맙다는 소감을 전했다.

인형극 공연은 현재 매주 3회 정도 이뤄지고 있다. 시흥시청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연결해주면 직접 찾아가서 공연한다. 인형은 극단 단원들과 직접 만든다.

대본도 직접 쓰고 무대장치도 수작업이다.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인지 모든 인형과 장비에 애정이 가득했다. 갯골인형극단은 편식, 성교육, 건강한 생활 등 아이들의 올바른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만들어 주기 위한 주제로 공연한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는 퉁퉁이와 홀쭉이다. 퉁퉁이는 친구들과 나가서 놀지 않고 집에서 햄, 소시지, 과자, 초콜릿 등을 좋아하는 어린이 인형이다.

홀쭉이는 콩, 채소 등을 먹지 않고 편식해 빼빼 마른 인형이다. 아이들에게 퉁퉁이와 홀쭉이가 엄마한테 혼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편식과 잦은 군것질을 하지 않도록 알리고 계도하는 게 인형극의 목적이다. 또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성교육에 대한 부분도 인형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

“처음에는 인형 만들기가 서툴렀지만 이제 3년차가 되다 보니 손에 많이 익었다. 인형극을 보며 즐거워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덩달아 신이 나서 일하게 된다.”

■ 월남전 참전부터 수송병까지 나라를 위해 받친 30년
군인이었을 때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1971년 월남전 파병을 꼽았다. 미군이 쓰고 남은 군복, 철모, 탄피 등을 모두 모아 한국으로 보내는 것이 임무였다.

“찌는 듯한 날씨 속에서 매일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특히 전쟁터 속에서 쓸만한 것들을 찾고 한 달에 한 번 오는 수송선에 악착같이 실어 나르려고 별의별 일들을 다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며 아직도 아찔한 순간들이 많다.”
 

  ▲ 갯골인형극단 황복수씨가 편식과 잦은 군것질을 하지 않도록 어린이들을 계도하는 인형극을 선보이고 있다. 오승현기자  
  ▲ 갯골인형극단 황복수씨가 편식과 잦은 군것질을 하지 않도록 어린이들을 계도하는 인형극을 선보이고 있다. 오승현기자  

모두가 가길 꺼리는 월남전이었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사람 사는 게 어차피 다 힘든데 더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든 것이고 덜 힘들다고 생각하면 덜 힘이 든다”며 “죽을 만큼 힘들었겠지만, 당시에는 ‘괜찮다 괜찮다’ 버티면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일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월남전 후 고국으로 돌아온 뒤 당시 업적을 인정받아 보병에서 수송병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그리고 지난 1995년 준위로 30년 군생활을 마쳤다.

평생 나라에 충성한 삶을 뜻깊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30년 이상을 나라에 충성하며 살았기에 남은 삶은 군이 아닌 사회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전역을 결정했지만, 막상 뛰쳐나온 사회는 그리 만만치 않았다.

군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다 보니 사회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시행착오가 많았던 것이었다. 군생활 30년보다 경비생활 10년이 더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사회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제대한 노병에게 10년 동안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인고의 시간 끝에 갯골인형극단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제대하고 정말 힘든일이 많았어요. 갯골인형 극단과 인연을 맺은 후가 되서야 전역하면서 다짐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참고 견디면 복이 온다고 했는데 아주 큰 복이 왔어요.”

■ 새로운 인형극 창작을 꿈꾸는 인생 제3막
군인으로서 나라에 충성한 인생의 제1막을 무사히 마치고 인형극단이라는 제2막을 열어 ‘나’라는 관객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는 황씨는 새로운 인형극을 만드는 제3막을 꿈꾸고 있다.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색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새로운 연극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예산 문제에 부딪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형극단의 인형은 극단 단원들이 직접 만들어 최대한 비용절감을 하고 있지만 인형 1개를 만드는데 20만~25만원이 들어가 예산이 부족할 때는 극단 단원들이 개인 주머니도 조금씩 털어가며 만들고 있다.

“가장 필요한 게 예산인데 지금도 빠듯하게 운영하고 있어 새로운 인형극을 만들기는 많이 어렵습니다. 지금 타고 있는 스타렉스도 인형들 갯수가 점점 들어나면서 할머니들 앉을 자리가 많이 좁아졌어요. 다 태우지 못해서 버스다 택시를 타고 공연 장소에 오는 분들도 있어서 그때마다 많이 미안합니다.”

30년 군생활로 다져진 부지런함과 우직함은 갯골인형극단에서도 높게 평가 받고 있다. 시흥시니어클럽 직원들도 성실성과 책임감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5명 극단 단원 중 14명이 할머니이기 때문에 차에 인형을 실고 단원들 이동을 위한 운전까지 모두 담당하고 있지만 완벽히 일을 처리하고 있다.

인형극을 하며 아이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 졌다고 한다. 웃음이 만면한 얼굴로 인형극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30년 동안 군인으로 일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직접 만든 인형으로 간단한 인형극을 시연할때는 목소리도 바꿔가며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였다. 자유자재로 인형을 움직이면서 “퉁퉁아 편식하면 안 돼 골고루 먹어야지”라고 대사까지 외치는 모습에서 인형극단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곧 있을 공연에서 아이들이 깔깔깔 웃는 웃음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설레고 기분이 좋습니다. 빨리 비가 그치고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요.” 당장 그가 만든 새로운 인형극은 볼 수 없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의 인형극단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영역을 넓혀가겠다는 의지에서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제3막으로 시작될 또다른 삶이 기대된다.

 

이정현기자

 

출처: 시흥뉴스 – [경기일보] 언제나 청춘 시흥 갯골인형극단 황복수씨(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