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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매일 매일 진화 중

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누군가에게 큰 즐거움이 되곤 한다. 어쩌면 무대 위의 배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대현 배우가 그렇다. ‘뭣 모르고’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했을 데뷔 무대를 통해 배우라는 이름을 얻게 된 순간부터,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자신이 하는 말을 듣고 또 듣기도 했고 벌떡 일어나보려고 하다가 ‘쿵’하고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한번도 만져본 적 없는 불을 만졌다가 호되게 데이기도 했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 신나게 웃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 둘씩, 한 순간 한 순간 아이가 성장하듯 김대현 배우도 다음 순간을 쉽사리 예상하지 못할 만큼 훌쩍 커버렸다. 춤에만 향해 있던 가지를 노래에 함께 뻗을 수 있게 되었고, 두렵기만 하던 연기는 이제는 꽤 재미있어졌다.

때때로 엉뚱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연기에 관해서 툭툭 던지는 말은 꽤나 무게감이 느껴졌다. 스타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배우’가 되는 길로 조금씩 걸어나가고 있는 김대현 배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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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배우의 꿈이 개그맨이었다는 것은 이제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소방관과 경찰관까지. 그가 꿈꿔왔던 모든 것들에는 자신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하면서도 확고한 중심이 있었다. 한 순간 연기라는 길로 방향을 정하게 된 것도 그 마음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연기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원서를 넣은 대학마다 떨어지기 바빴고, 경민대학 뮤지컬과는 예비 5번을 받아 간신히 합격했다. 입학하고 나서도 성대에 혹 때문에 저음조차 내기 힘들었고, 억지로라도 감정을 유도하려는 연기 수업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랬던 그가 남자 1등으로 졸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 사이에 얼마나 노력했을 지를 가늠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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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라기 보다는 학교에서 하라고 한 건 다했던 것 같아요. 노래하라면 노래하고 피아노 치라고 하면 피아노 쳤죠. 사실 노래도 연기도 다 하기 싫었어요. 너무 못하니까 무서웠거든요. 그래서 제가 연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유일하게 제가 학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했던 건 춤이었어요. 발레, 재즈, 한국무용, 현대무용 다 배웠죠. 근데 학교에서 얼마나 깊게 배우겠어요. 그래서 2학년 때도 1학년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후배들이랑 같이 수업을 받기도 했어요.”

예나 지금이나 김대현이라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성실함이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빈 공간을 노력과 꾸준함으로 채워나가곤 했다. 2005년 프로 무대에 오른 뒤에도 허리와 엉덩이에 알이 밸 만큼 춤을 추기도 했고, 아픈 것도 말하지 않고 참고 하다가 피를 토하기도 했다. ‘한번 하면 끝까지 하자라는 마음으로 때로는 미련하다 싶을 만큼 참 열심히 했다. 아니 순간순간 참 열심히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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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길을 닦아 나가던 김대현 배우에게도 제법 큰 기회가 찾아온다. 수 차례의 오디션 과정을 통과한 끝에 얻어낸 <미스사이공>의 앙상블과 엔지니어 커버 역은 배우로서 너무도 감사한 순간이자 더 없는 기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현아 니 목소리로 연기할 수 있겠니?”라는 한 선배의 말은 합격의 설렘도 자시 뒤로 미뤄둔 채, 현실이라는 눈으로 온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그로 인해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건넨 말은 가히 충격에 가까웠다.

배우가 이 목 상태로 관객들한테 돈 받으려고 했냐고 저를 거의 사기꾼 취급을 하더라고요. 충격인데 맞는 말 같았어요. 그래서 <미스 사이공> 측에도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고 연습 시작 이틀 전에 성대수술을 했어요.”

꾸준히 앞만 보고 달려오던 그에게 잠시 제동이 걸린 것이다. 성대수술 후 유일한 의사표현이었던 필담 탓에 장애인으로 오해 받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참고 때를 기다려왔지만, 한달 후에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는 큰 좌절과 실망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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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달을 참았어요. 너무 힘들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목소리가 나오고 나서도 옛날보다 노래도 안되고. 계속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영웅>에서 저를 좋게 보신 작가님 덕분에 <왕세자 실종사건>을 하게 됐는데, 차근차근 밟아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 목소리가 좋아지더라고요.”

그렇게 길기만 했던 터널의 끝에서 겨우 다시 만나게 된 빛도 그리 길지만은 않았다. 더 잘해보겠노라 다짐하며 참여했던 <왕세자 실종사건> 재연에서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고, 그 부상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치게 만들었다. 흡사 패잔병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 시기를 추억하는 김대현 배우 역시 낙천적인 자신의 성격마저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상 했다.

정말 많이 울었어요. 두 달 내내 집에서 맨날 술만 먹었어요. 그때 마음도 많이 무너지고, 마음의 벽도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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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생공부에 꽤나 비싼 삯을 치러야만 했던 김대현 배우가 관객을 다시 만나기 위해 내린 선택은 다소 의외였다
. 소극장 연극 <모범생들>. 그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자 이전에는 미처 그려보지 않은 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글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던 김대현 배우에게 노래도 춤도 없는 연극은 망망대해처럼 아득했다.

글도 못 읽고, 소리도 못 지르고 정말 너무 못했어요. 골방에 들어가서 대사 톤을 녹음하면서 계속 연습했어요. ‘순진한 새끼들아그 대사만 하루에 수없이 연습하기도 했죠. ‘난 왜 이렇게 안 들리지? 형들은 이렇게 잘 들리는데’, ‘왜 이렇게 부자연스럽지?’ 그 생각을 하면서 녹음하고 듣고 또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조금씩 제가 만들어 내게 되는 것들도 생기더라고요.”

그야말로 고군분투였다. 스스로와의 싸움이기도 했고, 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타고난 재능 대신 성실과 인내로 지지대를 세워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서민영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의 첫 리딩 때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 모두가 놀랄 수 밖에 없는 변화였다. <모범생들>을 완주한 당사자에게도 연기라는 단어는 새로운 의미였다.

이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마냥 즐거웠는데, 소극장 들어오면서 정서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평소에 잘 울지도 않고 화도 잘 내지 않는데도 무대에서는 해야 하잖아요.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니까 생각도 많아지더라고요.”

물론 지금도 연기는 참 어렵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그 당시에는 어렵고 또 어려운 것이 연기였다. 결국 그 고민들은 김대현이라는 배우를 쉬지 않는 배우가 되게 했다. <블랙메리포핀스>, <나쁜자석>, <빨래>, <Trace U> 등 쉴 새 없이 작품에 출연하며 때로는 여러 작품을 겹치기 일정으로 소화하기도 했고, 이전에 했던 작품에 역할을 바꿔서 다시 참여하기도 했다.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한 가지의 바람 때문이었다.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만 컸던 것 같아요. 대사를 이해하기 보다는 외우기만 하면서 감정적으로 연기했어요.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해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이것만하면 잘할 수 있겠지’, ‘이것만하면 배울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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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양은 동일해도 밀도는 천차만별이라 했던가. 주어진 시간을 남들보다 더 쪼개서 사는 것은 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노련하게 배인 굳은살이라도 만들고 싶었다. 그 과정 속에서 김대현 배우에게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적지는 않았다. 그 시기가 힘들지는 않았는지 묻자 오히려 밝은 얼굴로 덤덤하게 대답했다.

“상처를 받은 적도 있긴 했지만 이젠 안 그래요. 저 스스로도 완벽히 이해를 못한 상태에서 대사도 계속 버벅댔으니까요. 돈과 시간을 주고 보러 오셨는데 당연히 그럴 수 있죠. 그만큼 저는 무대 위에서 더 열심히 하고 잘해야죠. 노래랑 춤도 좋아하지만 어쨌든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연기를 하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예요. 물론 지금 다시 하게 된다면 그때보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을텐데라는 아쉬움은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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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대답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었다
. 바로 민준호 연출이다. 자신을 배우가 되게 만들어 준 사람이라고 표현할 만큼 민준호 연출에 대한 신뢰는 그 깊이가 상당했다.

“()준호 형을 조금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도 욕심인 것 같아요. 지금에서라도 만난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준호 형을 만나서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됐어요.”

정식 ‘극단 간다’의 단원은 아니지만 ‘반(半)간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우리 노래방가서 얘기 좀 할까?> 이후부터 민준호와 극단 간다라는 단어는 김대현이라는 배우의 작품 선택에 우선 순위가 되어버렸다. 실제로도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간다를 만난 후로 많이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건네곤 했다.

“간다는 저한테 너무나 감사한 사람들이에요. 준호형이나 선규형, 우진이 형은 앞으로의 제 인생에 무언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해도 항상 팁을 줄 것 같아요. 그리고 간다 배우들 모두 정말 멋있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굳이 누구를 시키거나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망치질하고 톱질을 해요. 무대를 쓸고 닦는 것도 그렇고요. 같이 하다 보면 제가 하는 게 무대에 있다는 것도 뿌듯해지더라고요. 심지어 야광테이프 만드는 것도 뿌듯하고 재미있어요.”

극단 간다는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지금까지 누구 하나 혼자 튀려 하거나 멋 부리지 않고 같이 어우러져 몸으로 직접 부딪쳐왔다. 그리고 모두 무대에서 진짜가 되려 한다. 때로는 투박하지만 우직한 김대현 배우가 극단 간다와 간다의 선장 민준호 연출을 만난 것은 어쩌면 맞춤 옷을 입은 것일지도 모른다.

준호 형이 항상 말을 해요. 캐릭터를 연구하려 하지 말라고. 일단 보고 인물에 대한 태도를 하나하나 하다보면 그게 캐릭터가 된다고. 그리고 연기에 대한 진화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옛날에는 텍스트에 있는 것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대사를 하기 전에 그 상황을 이해하면 그 다음부터는 대사를 잘 안 까먹고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주어 목적어가 조금 달라진다 해도 전달하는 이야기는 같으니까요. 형한테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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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도 김대현 배우는 지금 열심히 진화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아니 이미 한 단계 진화를 마쳤는지도 모른다. 현재 출연 중인 <뜨거운 여름>에서 그는 그의 배우 인생에서 가장 긴 대사량을 소화해야 했다. 결국 스스로 택한 모험이긴 했지만 그만의 고충은 꽤 컸다.

어느 날 연출님이 새벽에 전화를 해서 할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저한테 재희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5초 정도 멍했어요. 진안 역할도 너무 어려웠는데 재희를 제가 어떻게 하나 싶었죠. 게다가 ()선규형, ()의식이 형 둘 다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의식이형은 연습을 많이 못나왔는데도 알아서 연습해서 자기 걸 만들어 오더라고요. 심지어 너무 재미있게 잘하는 거예요. 저는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잘 모르거든요. 그래서 부담이 컸죠. ‘형들은 이렇게 잘하는데 난 맨날 연습실에 있었는데도 왜 이렇게 못하지?’, ‘난 뭐가 문제지? 내가 욕심이 많은 건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쉬어야 되나라는 생각도 했었고, 연습하면서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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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쉬어볼까
, 외국에 나가볼까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을 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뜨거운 여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는 소년처럼 해맑은 얼굴로 웃음에 전혀 인색함이 없었다. 마치 춤을 추면서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던 <로기수> 속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연기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 가장 달라진 점으로 대본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꼽는 김대현 배우는 그야말로 정신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사람이다. 넘어지긴 했으되 나태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에게 10년의 시간 속에 아쉬운 점은 없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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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만 예전에도 했다면 좋았겠다 라는 아쉬움은 있어요. 그런데 그 캐릭터들 때문에 지금의 저도 있어요. 그리고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었고요. 이번에 민진이랑 정말 많이 친해졌는데, 나중에 같이 여행도 가고 길거리 버스킹도 해보기로 했어요. 너무 힘들 때, 아무 생각 없이 기타를 치는 것도 참 좋더라고요. 앞으로는 좀 더 자유롭게 연기도 하면서 음악도 좀 더 배우고 싶어요. 가끔씩은 사람들한테 벗어나서 혼자만의 시간도 가져보고요. 그리고 모든 분들을 만족시켜 드릴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만족하실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하고 최대한 잘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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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뜨거운 열기 후에 얻은 시원한 가을’. 민준호라는 반환점을 돌아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되었고 최선을 다했던 지금 이 순간이 그에게는 가장 뜨거운 여름일지도 모른다. 뜨거울수록 더욱 가을을 시원하게 느끼는 것처럼 그가 배우로서 맞을 새로운 계절도 기대하고 기다려 봄직하다. 김대현이라는 배우의 참 좋은 역사가 시작될 시점이다.


글. 이하나(bliss@stagekey.co.kr)

사진. 이현주(teo@stagekey.co.kr)

 

 

 

 

 

출처: 뮤지컬 소식 – 매일 매일 진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