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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Stage : 연극 작가 박춘근, 김태형 인터뷰

 

Beyond the Stage   

오랜만에 이 코너를 다시 열었습니다.

무대가 있기까지 힘쓰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백기를 만회하겠다는 각오로 더 열심히 전하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홉 개의 옴니버스 작품들로 꾸며진 연극 <터미널>의 박춘근 작가와 김태형 작가를 만났습니다.

‘독 플레이’의 점차 진화하는 모자이크 그림, <터미널>이 작가들의 손에서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이제 펼쳐집니다.

텍스트가 궁금해지는, 연극 <터미널>

 

글을 끄적거리는 사람으로서,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더군다나 재미있고, 기발하며, 때론 가슴 뭉클한 아홉 편의 연극 극작가들을 만난다는 것은 말이다. 시간 관계상 아홉 분을 다 만날 수 없어서 <Love so sweet>의 김태형 작가와 <내가 이미 너였을 때>의 박춘근작가를 만나기로 했다. 두 작가들은 자신들이 인터뷰이로 선택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했다. 아마도 미모순일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합의하고 화기애애한 인터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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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터미널’인가.

창작집단 ‘독讀’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따로 또 같이 작품을 쓰는 작가집단이다. 그들이 ‘터미널’을 주제로 잡아 쓴 아홉 편의 작품들이 프로덕션 맨씨어터를 만나 무대에 올리졌고, 연극 이름도 <터미널>이 되었다.

“2008년인가에 <서울역>이란 것을 장소 소재로 두고 같이 써봤는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장소 얘기도 나오고 하면서 일단 ‘역’을 정하고 아예 구체적으로 ‘서울역’으로 하자 정하니까 그때부터 자기 아이디어들을 갖고 오면서 지금의 터미널로 확장되었죠. <서울역>이 ‘독讀 플레이’의 모태같은 거에요. 하지만 <서울역>때 남아있는 작품은 지금 하나도 없어요.(웃음) 이번에는 장소에 너무 국한하지 말고, 주제도 될 수 있고, 뭔가가 끝나고 시작하는 시점일 수도 있도록 열어두었어요. 모든 작품이 터미널은 연상되지만 어느 하나에 국한되지 않게, 버스 터미널일 수도 있고, 부두일수도 있고, 우주 정거장일수도 있는 거죠.(박춘근 작가, 이후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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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맥락만을 가져와서 만나고, 헤어지고, 떠나고, 보내고를 자기만의 식으로 연결한 작가들이 있어서, 어떤 부분은 터미널이란 주제가 안 와 닿는 에피소드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작가들은 터미널이란 공간에 대해 얘기도 많이 하고, 책도 읽고, 고민도 하고 쓴 작품이에요. 기존의 다른 ‘독讀 플레이’에 비해 많이 주제를 열어둔 측면이 크죠. 그래서 오히려 자유롭게 나온 거 같아요.(김태형 작가, 이후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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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의 아홉 작품들은 물리적인 공간인 종착과 출발의 지점에서 인연을 끝내고, 새로 만들고, 혹은 새로운 선택들을 한다. 과거의 인연을 끝내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도 하고(Love so sweet), 엉뚱한 사건에서 인연이 맺어지기도 하며(전하지 못한 인사), 한 인생의 종착역에서 남겨진 사람들의 결정이 있고(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조우하기도 한다(내가 이미 너였을 때). 혹은 과거의 기억과 현실이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펭귄), 과거를 잊고자 하는 자와 기억하고자 하는 자가 충돌하기도 하며(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 다른 이에게 약속되었던 삶을 통해 내가 변화하기도 한다(환승). 사실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삶은 언제나 과거를 끝내고 미래로 달려가는, 매 순간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연극 <터미널>의 아홉가지 작품들은 터미널이란 현실에서 과거를 보내고 미래를 선택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홉가지 작품의 아홉가지 블럭

많이 알려져 있지만, ‘독讀 플레이’의 <터미널>은 2013년 프로젝트 시야에서 초연을 한 바 있다. 그 중 세 편과 새로 쓴 여섯 편이 2015년 <터미널>로 꾸며졌다. 2013년과 2015년의 작품구성은 거의 작가들의 선택에 맡겨졌다. 그래서 초연 때 반향이 좋았지만 작가가 희망해서 새로 쓴 작품도 있고, 그대로 올린 작품도 있다. 작가들이 중심이 된 ‘독讀 플레이’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는 재연방식인 셈이다. 공연을 올리기로 결정하고 같은 주제로 짧은 시간 내에 새로 써야 하는 부담감도 크고 품도 많이 들 거 같았지만 오히려 함께 쓰는 과정은 더 ‘노련해졌다’고 한다.

“6개 작품이 새로 나왔을 때, 전보다 더 좋았어요. 나도 새로 쓸 걸 이렇게 생각할 만큼, 더 깊어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가들이 할 말이 많아진 거 같아요. 2년 전과 지금은 많이 바뀌었으니까 사회적 이슈와 연결해서, 인물들과 연결해서 작품마다 함의는 풍성해 진거 같아요.”(김)

“6명이 새로 토론을 해서 또 함께 썼죠. 3명 빼고, 우리끼리.. 날로 먹은 3명 욕도 좀 하고..(웃음) 그런데 2~3번 거친 과정이 있어서 그런지, 소재를 가지고 왔을 때나 코멘트 해줄 때, 받아들일 때, 다 서로 더 노련해져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박)

박춘근 작가의 <내가 이미 너였을 때>는 과거, 현재, 미래가 조우하는 매우 독특한 구조의 작품이다. 타임머신도 나오지 않고, 시간여행도 아닌데 이들은 어느 터미널에서 그냥 맞부딪친다.

“처음 발상은 어느 물리학 책에 보니까 공간은 설명하는데 시간은 뭔지 잘 모른다라는 게 있었어요. 어쩌면 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같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신기했어요. 매 순간이 사실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지 과거의 어느 순간 하나로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구요, 처음엔 더 모르게 썼는데 몇 번 고쳤거든요. 어쨌든 좀 복잡한 얘기를 풀게 됐어요.(박)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에요. 그런데 그걸 20분 안에 풀어내려고 하니 어렵죠.”(김)

김태형 작가의 <Love so sweet>을 보고 필자는 ‘덕통사고’를 당한 인물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귀진’은 일본어 학원에서 만난 젊은 남자, 그를 통해 알게 된 일본 아이돌 그룹 아라시, 아라시의 콘서트를 보러가는 것을 기점으로 과거와 작별하는 여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덕통사고는 비참하고 가엾은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비극적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제가 반 썼고, 나머지 반은 배우들이 만든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캐릭터의 힘이겠죠. 이야기가 새로울 것도 없는 그냥 구질구질한 얘기인데도 관객들이 좋아해주신 건 캐릭터가 가진 비극성 때문일 텐데, 배우가 그걸 잘 표현해 줬어요. 제가 쓴 것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제가 건드리지 못한 부분까지 표현을 해줘서 이번에 재공을 보면서 초연 봤을 때 느끼지 못했던 것까지, 저 인물이 그래서 그랬겠구나 느껴지더라구요.”(김)
“그럼 다른 배우들은 별로란 얘기인가?(웃음) 농담이구요. 배우들이 다 탐내는 작품이었어요.(박)
따로 또 같이 쓰다, 창작집단 ‘독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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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만의 세계관이나 작품 세계가 뚜렷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스텝들과 조율해서 작업해야 하는 연출보다 텍스트를 쓰는 사람이니까 더욱 그럴 거 같았다. 그런데 10년동안이나 창작집단 ‘독讀’은 같이 쓰기를 해왔고, 이미 성공적으로 ‘독讀 플레이’를 수차례 올렸으며, 앞으로 10년은 더 함께 쓰기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냥 아홉 명이 함께 10년을 놀아도 의견이 분분할 텐데, 각자 생업이 있는 사람도 있고 다른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함께 쓰기가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서로 큰 소리 안내는 사람들이에요. 기본적으로 서로 양보하는 성향이 없잖아 있고, 서로 남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들이고, 서로의 작품을 좋아하고.. 연대의식 같은 것도 있죠. 대학로에서 작가로서 살기가 쉽지 않은데 누군가 골방에서 나와 비슷한 짓을 하고 있구나, 나처럼 어디가서 상처받고 있겠구나 라면서 같은 상처를 바라보고 있는 연대의식이 있죠.(박)”

“아홉 명 다 상처를 잘 받는 사람들이고, 그러다 보니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해요. 그러니까 작가들끼리 합평을 한다니까 센 말도 오고 갈 거 같고 그렇지만 상처도 팍팍 줄 거 같고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주죠.(웃음)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코멘트해주는 것은 다 도움이 되요. 왜냐면 학교를 졸업하면 내 작품을 읽어줄 수 있다는 사람이 없어요.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어떻게 해야 할지 자기 안에 빠지기 때문에 이걸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고, 그런 점에서 자극을 받죠.”(김)

“예전에는 각자 색깔이 있지만 그게 발아 수준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니까 정말 작가마다 다른 색깔로 꽃이 펴요. 근데 그걸 더 특색있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들이 생기기도 했어요. 이건 천정환 표, 이건 김태형 표.. 역시 조정일이야. 뭐 이런 거.. 자기 색깔을 강조하려는 면이 더 생기기도 해요.”(박)

텍스트로 읽는 희곡

연극에는 스타 배우도 있고, 스타 연출가도 있다. 하지만 아직 티켓 파워까지 갖춘 스타 작가는 나오지 않았다. 창작집단 ‘독讀’은 연극에서 텍스트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는 모임이다.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김태형 작가는 직접 출판사, ‘제철소’ 를 열었고, 첫 책으로 창작집단 ‘독讀’의 희곡 <당신이 잃어버린 것>을 출판했다.

“저는 희곡이 연극 대본이기 이전에 하나의 텍스트로서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극장에 있다 보면 공연이 잘 나온 날이 있어요. 꼭 관객의 반응만이 아니라 배우들의 합이라든가,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았던 날. 그러면 여지없이 관객들이 희곡있는 곳으로 와요. 사람들이 관심 있다는 거고, 이건 어떻게 쓰여졌을까 궁금해 하는 것은 텍스트의 효력이 있다는 거죠. 이번에 책 내고 인터넷 서점 MD들을 만나러 갔는데, 일부러 문학MD들을 만나러 갔어요. 원래 희곡집이 예술 쪽으로 분류가 되어 있거든요. 그랬더니 한 MD가 그러시더라구요. 자기가 문학MD를 꽤 오래 했는데, 셰익스피어 말고는 이렇게 희곡집을 들고 찾아오시는 분이 처음이었다고.(웃음) 이번에 한 인터넷 서점에서는 문학분야 메인에 노출이 되기도 했어요.”(김)
생각해보면 유럽에서 공연예술이 꽃피게 된 것은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셰익스피어를, 체홉을 텍스트로 꾸준히 읽고 있는 것에 힘입은 바 크다. 요즘엔 극장에서 희곡집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 극장 밖을 떠나 소설처럼 읽게 되는 날은 지금의 척박한 대학로 연극계도 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전에 독자들이 연극 <터미널>을 보러가서 매표소 옆 책 판매대를 지키고 있는 분을 발견한다면 김태형 작가를 직접 만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으리라.

다시 한 번 극작을 생각하다

두 작가는 입을 모아 자신이 쓴 작품의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그 맛에 사로잡히면 힘들어도 연극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작가 모두 출발이 꼭 극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연극에 매료되고 산을 하나 넘으면 또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어느 덧 극작의 길에 들어서 있게 되었다.

“연극은 자기가 재밌어하지 않으면 못 버티는 일이에요. 재밌던 일도 힘들면 재미가 줄어들기 마련이기 때문에, 연극의 묘미를 스스로 즐기지 않으면 안돼요. 희곡을 읽는데도 훈련이 필요해서 공연을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희곡을 많이 접해야죠.”(박)

“만약 머릿속에 작가의 상이 있다면 그걸 지워야 해요. 머릿속의 작가와 현실의 극작은 괴리가 크고, 거기서 많이 좌절하거든요. 제가 경험해 본 바로는 극작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작가들과 좀 다른 거 같아요. 자신의 인물이 무대 위에서 구현되는 희열을 느껴야 할 수 있는 일이죠.”(김)

창작집단 ‘독讀’은 앞으로 계속 이런 따로 또 같이 쓰기 작업을 축적하려고 한다. 일종의 희곡뱅크를 만들어 두고, 필요한 극단이나 기획사에서 원하는 조합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때는 이번 <터미널>처럼 아홉 명이 모두가 달라붙는 방식이 아니라 사랑 이야기 3편, 가족 이야기 4편 등 다양한 조합으로 작품들이 올려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독讀 플레이 ’의 소녀시대 태티서인 셈이다. 연극 <터미널>과 창작집단 ‘독讀’을 만나고 나니, 몇 년 후 대학로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필자는 즐거워졌다. 서점에서는 다양한 희곡집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거리에는 ‘김태형 작품전’, ‘박춘근 작품전’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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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enseuse@stagekey.co.kr)

출처: 뮤지컬 소식 – Beyond the Stage : 연극 작가 박춘근, 김태형 인터뷰